블록체인 킬러앱 (Blockchain’s Killer Apps)

SJ
12 min readOct 2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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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의 간단한 역사

2009년에 비트코인이 처음 나온 이후, 비트코인을 개선해보려는 Litecoin, Ripple, Dash 등 지불 류의 코인이 많이 나왔고, 2015년에는 이더리움이 처음 나오면서 스마트 컨트랙트를 올려 지불 이외에 다른 목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 생겼습니다. 그 즈음, 사람들은 블록체인 기술이 Payment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후 2016년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Blockchain App Platform”을 지향하는 이더리움이 나온 이후로, 이더리움처럼 플랫폼을 먼저 선점하기 위하여 NEO, QTUM, ICON, ADA, LIST, NEM, EOS 등 수많은 플랫폼 지향 블록체인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국내에도 올해 들어 GroundX의 Klaytn, 두나무의 Luniverse, LINE의 LINK 등). 이는, 플랫폼 위에 올리는 dApp보다 플랫폼 자체에더 많은 가치가 모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인데(Union Square Ventures의 Fat Protocols 참조 — http://www.usv.com/blog/fat-protocols), 아마도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를 경험하면서 사람들이 플랫폼의 가치를 알게 되었고,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면서 먼저 그 기술의 플랫폼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킬러앱은 어디 있나?

플랫폼 경쟁을 하는 것은 좋은데, 문제는 그럼 그 플랫폼 위에서 돌아갈 킬러앱(또는 dApp)은 어디 있나? 하는 것입니다. 현재 EOS의 block.one을 비롯하여 ‘개발 팀’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플랫폼 블록체인들은 다들 자신의 블록체인 플랫폼을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그 위에 올라갈 dApp들을 발굴하고 인큐베이션과 투자도 하는 등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사용자들의 dApp 사용 수준은 Daily Active User (DAU) 기준 수천명 수준으로, 인터넷이나 모바일과 비교할 때 사용자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될 정도로 처참한 수준입니다. 사실 블록체인 기술에 제일 관심이 있다는 크립토 업계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조차 dApp을 자주 쓰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이니, 이런 dApp들이 대중에게 퍼져 mass adoption으로 나간다는 것은 현 시점에서는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Ethereum의 dApp 랭킹(2018년 10월 18일) — https://dappradar.com/dapps
EOS의 dApp 랭킹 (2018년 10월 18일) — https://dappradar.com/eos-dapps

2018년 말 지금 시점에서 보면, 쓸만한 dApp이 없는 상태에서 Killer dApp이 나올 것을 기대하며 다들 플랫폼을 먼저 만들고 있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Apps-Infrastructure Cycle

왜 블록체인에는 Killer App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중에, 몇 주 전에 Fat Protocols라는 thesis를 가지고 있었던 Union Square Ventures에서 ‘The Myth of The Infrastructure Phase’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Apps-Infra Cycle — https://www.usv.com/blog/the-myth-of-the-infrastructure-phase

이 글에 의하면, 원래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인프라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쓰는 앱(소위 킬러앱)이 먼저 나오고, 그 이후에 그 앱을 수많은 사람들이 쉽게 쓰도록 하기 위해 인프라가 만들어지고, 그러면 그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앱이 나오고, 이런 식으로 “앱 -> 인프라 -> 앱 -> 인프라”와 같은 사이클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구가 나오면 그 전구를 많이 쓰도록 하기 위해 전력망이 생기는 것이고 비행기가 나오면 공항이 생기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크립토 세계에서는 마땅한 킬러앱도 없이 먼저 인프라부터 만들고 있고, 이건 순서가 거꾸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구 — 전력망 — 전자제품

그래서 과연 Apps-Infra Cycle이 맞는 것인지, 옛날 전구-전력망 스토리를 한 번 직접 찾아 보았습니다.

전구

1870년 경 사람들은 거리에서는 가스를 이용한 가로등을 사용하고 집에서는 촛불이나 기름에 불을 붙여 빛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토마스 에디슨이 1879년에 처음 발명한 전기를 이용한 전구(백열등)는 밝기나 지속시간 등 성능이 가스 라이팅에 비해서 좋았고, 특히 가로등을 쓸 수 없었던 가정에서는 촛불과 비교할 수도 없이 월등하였기 때문에(“킬러앱”이지요) 에디슨은 먼저 뉴욕의 각 가정에 자신이 발명한 전구를 깔기 위해 Edison Illuminating Company라는 회사를 세우고 뉴욕 지역에 110볼트의 직류(DC) 전력망을 깔기 시작했습니다(“킬러앱”에 이어 따라오는 “인프라”). 당시 교류(AC)를 가지고 새로 전력망 사업에 들어온 Westinghouse와의 1880년대 후반 전력망 플랫폼 싸움(AC v. DC)에 관해서는 위키피디아의 이 글을 참조하세요: War of the currents — https://en.wikipedia.org/wiki/War_of_the_currents.

전기를 꼭 전구를 밝히는 데만 써야 하나? - 전기 킬러앱들

이렇게 전구를 밝히기 위해 전력망이 다 깔리자, 사람들은 ‘이 전기라는 것이 전구 이외에도 쓰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여러가지 시도를 하게 됩니다. 실패한 시도도 많았지만 전력망이 1890년대 들어와 가정에 깔리기 시작하면서, 계속 전기를 사용한 킬러앱들이 나오게 됩니다.

전력망 인프라를 바탕으로 나온 킬러앱들에는, 진공청소기(1901), 다리미(1903), 세탁기(1907), 토스터(1909), 냉장고(1913), 식기세척기(1913) 등등이 있고, 아직도 사람들이 많이 쓰고 있죠.

그런데 당시 나온 제품들을 보면 제품 끝에 ‘램프홀더 플러그’가 달려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아래 사진). 당시 집에는 콘센트가 없었기 때문에, 전구를 빼서 그 자리에 전구 대신 램프홀더 플러그를 꽂아서 토스터기와 같은 제품들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전력망을 깔 때 전구 이외의 사용을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지점입니다.

전기 토스터기 (1909)

그런데, 이렇게 킬러앱은 사람들이 될 만한 걸 찍어서 나온 것은 당연히 아닐테고, 실패한 제품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새로운 것이 처음 나오면 그걸 어떻게 어떤 곳에 쓸 수 있을지 아무런 감이 없기 때문에 이런저런 시도를 하게 되고 그 중에 몇 가지 사람들의 수요를 긁어줄 수 있는 제품들만 킬러앱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전기와 같이 새로운 것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어떤 것을 필요로 할지(예를 들면, “사람들이 빨래를 대신 해 주는 기계를 필요로 할 것인가?”)를 알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은 전기가 없는 상태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세탁기가 없다고 불편한 점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죠. 지금 사람들도 스마트폰 없이는 못 살지만, 2007년 이전만 해도 폴더폰만으로도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죠. 결국, 전에 없던 전혀 다른 어떤 새로운 기술이 나왔을 때 킬러앱을 찾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블록체인 킬러앱 찾기

그러면 다시 블록체인 이야기로 돌아와서, 냉장고, 세탁기와 같은 킬러앱을 블록체인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새로운 기술이 나왔을 때 어떤 것들이 킬러앱이 됐었는지 한 번 표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전기, PC, 인터넷, 모바일에 이어 블록체인이 새로운 큰 기술이라면 뭐가 킬러앱이 될까요.

전기, PC, 인터넷,모바일 그리고 블록체인(?)

첫 킬러앱들, PC가 나왔을 때 스프레드시트, 인터넷이 나왔을 때 이메일, 모바일이 나왔을 때 아이폰은 기존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사용자 경험을 주었을 것 같습니다(그 중 인터넷은 직접 경험하기도 했고 인터넷으로 외국의 누군가와 첫 채팅을 했을 때의 놀라웠던 느낌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블록체인의 경우에도 비트코인이 해외 송금이나 마약거래 등에서 엄청난 사용자 경험을 주기는 했지만, mass adoption이 없었다는 측면에서 킬러앱이라고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만약 비트코인을 킬러앱이라고 보고, 이더리움이나 EOS 등을 인프라로 볼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킬러앱은 어떤 것이 될 수 있을까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현재 나와 있는 dApp 들은 블록체인 기술의 특성 그 자체를 1차적으로 이용한 것들만이 나와 있는 느낌입니다. 예를 들면, ‘탈중앙화(decentralization)’하여 미들맨을 제거하려는 각종 ICO 프로젝트들, ‘불변성(immutability)/비가역성(irreversability)’을 이용한 블록체인에 기록을 남기려는 서비스들, ‘투명성(transparency)’을 이용한 도박 dApp들, FOMO3D, 물류관리 프로젝트들, ‘희소성(scarcity)’을 이용한 Cryptokitties, Mossland 등의 프로젝트, ‘가치전달(value transfer)’을 이용한 지불형 코인들, ‘토큰 이코노미(token economy)’를 이용한 Steemit 등의 프로젝트 등, 모두 블록체인의 특성 그 자체를 이용한 것이지 그것을 토대로 한 단계 더 나아가지는 못한 느낌입니다.

PC를 예로 든다면 ‘빠른 계산’이라는 특성이 맞추어 계산기를 만드는 수준, 인터넷을 예로 든다면 ‘PC간 통신’이라는 특성이 맞추어 이메일이나 채팅 서비스를 만드는 수준에 그치고,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전자상거래나 검색, 소셜네트워크를 만든다거나(인터넷) 하지는 못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앞으로 생각해 볼 점들

위에서 이야기한 비즈니스 모델 이외에도, mass adoption이 가능하려면 우선 첫번째 허들이 되는 지갑관리 문제(프리이빗키 관리 포함)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합니다. 현재와 같은 환경이라면 지갑의 생성과 관리가 너무 불편해서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도저히 블록체인 기반 dApp을 쓸 수 없어 킬러앱이 나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어떻게든 지갑관리의 어려움 문제를 해결하거나 아니면 사용자가 지갑이 있는지 몰라도 되도록 뒷단에서만 블록체인 기술을 쓰는 접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최근에 두나무에서 나온 BitBerry 지갑을 써보니 카카오톡 아이디로 로그인이 가능하고 매우 편한데, 반면 거래소에서 하듯이 프라이빗키를 회사가 별도로 관리하고 있었습니다(프라이빗 키가 폰에 저장되지 않고 사용자가 자신의 프라이빗 키를 알 수 없음).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Trusted third-party를 피하려고 블록체인 기술을 만들었는데 프라이빗키를 다시 중앙화된 서버에 저장한다?”) 이유야 어쨌든 매우 편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블록체인은 어쨌거나 데이터베이스이고 데이터베이스는 back-end 관련 기술인데, 사용자가 서비스의 데이터베이스가 MySQL인지 다른 것인지 아니면 직접 쓰는지 AWS에 쓰는지 아니면 블록체인인지 이걸 왜 알아야 하는지도 한 번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서비스 제공자가 무얼 쓰던 그냥 빠르거나 싸면 되는 것이지 무슨 대단하고 혁신적인 기술을 쓰는지는 알고 싶어하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는 것이 아닐까요.

사업자의 입장에서도, MySQL 등 일반 DB에 비해서 매우 느리고 매우 비싼데다가 DB가 일반에 공개되어 있는 블록체인을 왜 써야 할까요? 즉, 현 시점에서는 서비스 중에서 블록체인에 올릴 필요가 있는 일부분만 올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미 킬러앱이 나온 것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dApp이라는 것을 꼭 on-chain에서 돌아가는 앱에 한정하지 않고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앱’ 정도로 넓게 정의한다면 킬러앱이 이미 나온 것이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ICO (Initial Coin Offering)

ICO 프로젝트의 내용을 떠나서 ICO 그 자체가 킬러앱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ICO가 나오면서 사람들은 예전에는 할 수 없었고 예전에는 VC 등 기관 투자자만이 가능했던 초기 프로젝트에의 투자와 직접 참여가 가능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다른 나라에 있는 프로젝트에도 투자나 참여가 가능하게 되었죠. 2018년 말 시점에는 이미 열기가 많이 사그라든 것은 사실이지만, ICO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특히 2015–2017년까지 사람들이 ICO에 열광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거래소(특히, 채굴형 거래소)

거래소는 상당히 중앙화 되어 있고 그 때문에 해킹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어쨌든 실제로 돈이 벌리고 수많은 사용자들이 이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거래소 중에서도, 올해 FCoin을 필두로 나타난 여러 채굴형거래소들은 나름의 토큰 이코노미를 작동시켜 주주나 임직원이 아닌 참여자들에게 이익을 돌려주고 있는데 이러한 방식이 어떻게 발전할지, 또 지속 가능한 전략인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블록체인/크립토 업계에서 실제로 돈을 벌고 있는 것은 사실 거래소이고, 그렇기 때문에 거래소에서 많은 새로운 실험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용자에게 주는 가치: 그래서 좋은게 뭔데?

블록체인 기술을 쓰던 AI나 딥러닝이나 무슨 대단한 기술을 쓰던 결국 사용자에게 중요한 것은 “됐고, 그래서 좋은게 뭔데?”에 대해서 명확한 답이 나오는 앱이 결국 킬러앱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앱은 뒤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하는지 사용자들이 전혀 모르는 앱이 될 수도 있고,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한 것은 사용자들이 알지만 상당히 중앙화 된 형태가 될 수도 있고, 그 외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새로운 형태가 될 수도 있지만, 결국은 PC가 나올 때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이 그랬듯이, 인터넷이 나올 때 이메일이나 인터넷 쇼핑이 그랬듯이, 모바일이 나올 때 카카오톡이 그랬듯이, 무언가 소비자가 느끼기에 기존의 것보다 10배, 100배 이상 좋은 것이 있어야 그게 바로 킬러앱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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