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킬러앱을 찾아서 (In Search for Blockchain’s Killer Apps)

SJ
15 min readOct 5, 2019

블록체인으로 들어오는 대기업들

삼성, LG 등 기존의 대기업은 물론이고, 카카오와 네이버와 같은 IT 대기업들, 그리고 은행과 증권사 들까지 블록체인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기존의 대기업들

삼성전자는 블록체인 지갑의 개인키(private key)를 보관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만든 저장소인 블록체인 키스토어를 갤럭시 폰에 탑재하는가 하면, 무선사업부에 블록체인 TF를 만들어 블록체인 메인넷 개발을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삼성SDS와 LG CNS는 각각 기업용 블록체인 플랫폼인 넥스레저와 모나체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KB국민, 신한은행 등 은행들도 기업형 벤처캐피털(CVC)를 통해 블록체인 기업에 투자하거나 업무협약 등을 통해 직접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뉴스를 검색해 보면 수많은 대기업들이 블록체인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카카오: 클레이튼(Klaytn)

카카오는 클레이튼이라는 블록체인 메인넷을 직접 만들어 올해 6월 24일에 런칭하였고(첫 블록: https://scope.klaytn.com/block/0), 클레이튼 메인넷에는 플랫폼 인프라를 함께 운영할 파트너이자 노드를 운영하는 ‘거버넌스 카운슬(Governance Council)’이 있는데 여기에는 이미 알려진 것처럼 각 분야의 유명 대기업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클레이(KLAY)라는 암호화폐도 이미 발행되어 있죠.

https://www.klaytn.com/governance-council

라인(네이버): 링크(LINK)

라인은 카카오보다도 훨씬 빠른 2018년 8월 23일에 이미 LINK라는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만들었고(첫 블록: https://scan.link.network/0x300/block/0), 이미 450만개 이상의 링크 코인(LN)이 발행되어 Bitbox 거래소(bitbox.me)를 통해 유통되고 있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2019년 9월 기준 시가총액은 대략 3,720만 달러(약 441억 원)에 달하고 있습니다.

LINK 코인 시세 (LN/USDT) — 18년 10월부터 19년 9월 17일까지, Bitbox 거래소 (https://www.bitbox.me/exchange/?coin=LN&market=USDT)

대기업들이 찾고 있는 것: 킬러앱(Killer App)

이들 대기업들이 블록체인에 들어와서 찾고 있는 것은 바로 수많은 일반 대중들이 사용할 “킬러앱(Killer Application)”일 것입니다. 블록체인에서 ‘킬러앱’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 대중화되어 보통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오기 위해선 필수적인데, 모두가 오래 전부터 찾고 있지만 아직 아무도 찾지 못해서 이제는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유니콘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제는 상상 속의 유니콘처럼 느껴지는 블록체인 킬러앱

블록체인 킬러앱이라는 것은 과연 있을까요? 있다면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힌트를 얻기 위하여 블록체인 이전에 있었던 두가지 메가 트렌드였던 PC와 인터넷 시절에는 무엇이 킬러앱이었는지 한 번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PC를 대중화시킨 킬러앱: VisiCalc (1979년)

PC를 대중화시킨 킬러앱이라고 흔히들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VisiCalc; Visual Calculator의 약자)라는 스프레드시트 소프트웨어였습니다(요즘에도 흔히 사용하는 엑셀의 초기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1979년에 출시된 애플II 컴퓨터에 처음으로 공개되었던 VisiCalc는 그 프로그램이 주는 가치와 효용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엑셀이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보세요- 휴대용 전자계산기로 수많은 계산들을 수동으로 다 해야 합니다), 100달러짜리 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기 위해 사람들은 1,300–2,600달러나 들여 애플II 컴퓨터를 구입할 정도로 그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VisiCalc라는 킬러앱 덕분에 그동안 극히 일부 사람들만 사용하던 컴퓨터가(당시 컴퓨터 좋아하는 사람들은 hobbyist라고 불렸습니다 — ‘특정 취미에 아주 열심인 사람’이라는 뜻) 일반사람들에게까지 퍼지게 된 것이죠.

VisiCalc 이전: 인간 스프레드시트 (Billy Wilder 감독 The Apartment (1960)의 한 장면)
VisiCalc 소프트웨어 (1979년)

당시 애플II 컴퓨터 광고 속 컴퓨터 화면을 보면, VisiCalc 소프트웨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애플II 컴퓨터 광고

인터넷을 대중화시킨 킬러앱: Mosaic (1993년)

첫 인터넷 브라우저인 Mosaic가 나오기 전인 1992–1993년은 웹이 시작되는 시기였습니다. 1992년에 전세계에 10개밖에 없었던 웹사이트는, 1993년에 130개, 1994년에 2,738개로 늘어나더니, 1995년에 수만개, 1996년에 수십만개로 되고, 1997년에는 백만개를 넘길 정도로 급속도로 늘어납니다.

https://jonathangray.org/2017/10/09/total-websites-on-the-internet/

당시 컴퓨터는 이미 가정에 많이 들어와 있었고 PC에는 이미 GUI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도입한 윈도우 3.0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우스로 무언가를 클릭해서 컴퓨터를 사용하는데 익숙했습니다. 그런데 웹사이트 개수가 이렇게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짐에도 불구하고, 당시 웹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반 사용자들이 윈도우 3.0과 같은 GUI 가 아닌 복잡한 유닉스(Unix) 터미널 창을 실행시켜서 사용해야 했습니다.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은 이 점에 주목해서, Mosaic라는 인터넷 브라우저를 만들어 웹도 일반 컴퓨터를 사용하듯이 마우스로 클릭하면 원하는 웹사이트를 볼 수 있도록 하여 일반 사람들도 쉽게 웹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Mosaic (1993)

당시를 돌아보면, VisiCalc와 Mosaic 모두 당시의 일반 사용자들에게 필요한 효용을 정확하게 제공하기도 했지만, 이들 소프트웨어가 킬러앱이 되기 위해 필요한 다른 인프라(이미 가정에 많이 있던 PC들, 급속히 늘어나는 웹사이트 개수)도 이미 준비되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블록체인을 대중화시킬 킬러앱은 어디서 나올까?

블록체인이 만약 컴퓨터와 인터넷처럼 미래에 널리 대중화가 될 수 있는 기술이라면 당연히 VisiCalc나 Mosaic와 같은 킬러앱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킬러앱은 어디서 나올까요? 대기업이 잘 만들 수 있을까요?

킬러앱은 스타트업에서

여기서 재미있는 지점은 대부분의 킬러앱들은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인터넷 브라우저인 Mosaic는 물론이고, 그 이후의 수많은 킬러앱들(Yahoo, Google, YouTube, Facebook, Twitter, Instagram, WhatsApp, Uber / 네이버(검색, 지식인), 싸이월드, 카카오톡, 김기사, 애니팡 등등)을 생각해보면 PC나 인터넷, 모바일과 같은 새로운 메가트렌드가 올 때 기존의 강자들이 킬러앱을 찍어서 맞추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고, 대부분 스타트업에서 킬러앱이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아주 큰 메가트렌드가 시작될 때 그 트렌드는 대부분 아주 조그마한 분야에서 극소수의 사용자들로부터 시작되고 그래서 초기에는 무시할 만큼 작아보이기 때문에, 인력, 자금과 같은 리소스를 모두 갖춘 기존 시장의 플레이어(incumbents)들이 킬러앱이 나오더라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면서, 결국 스타트업이 킬러앱을 만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1993년 전세계에 웹사이트가 130개밖에 없는 인터넷을 생각해보면, 인터넷이 과연 next big thing이 되리라고 어느 누가 쉽게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요? 1993년 당시 이미 윈도우로 PC 시장을 점령하고 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인력과 자원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인터넷 브라우저를 만들지 못했을까요? 이에 대해 당시 MS의 부사장이었던 스티브 발머는 인터뷰에서(아래 영상 4분 45초부터),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95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고, Mosaic 팀처럼 다른 우선순위 없이 하나의 상품에만 100% 열정적으로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회고합니다.

대기업이 킬러앱을 잘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티브 발머가 이야기한 것처럼 이미 잘 되는 기존의 비즈니스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우선순위의 문제), PC와 인터넷처럼 기존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기술은 그것이 나타났을 때 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를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어떤 것이 되는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갖가지 시도를 하고 (또 망하고), 그 수많은 망한 스타트업들의 시체 위에 하나가 살아남아 그것이 킬러앱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즉, 새로 나온 기술이 기존의 기술과 다르면 다를수록 어떤 서비스가 사용자들에게 먹힐 것인지 아닌지를 예측하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대기업에서 탑-다운 방식으로 찍어 맞추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 아닐까요.

결국, 여러가지 이유로 블록체인의 킬러앱도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대기업에서 나올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서비스가 블록체인 킬러앱이 될까?

앞서 이야기한 대기업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시장에 먹히는, 되는 하나의 블록체인 킬러앱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떤 서비스가 킬러앱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과거 PC와 인터넷 시절 킬러앱을 만들었던 Mosaic의 마크 앤드리슨과 VisiCalc를 만들었던 댄 브리클린의 이야기로부터 무언가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Dan Bricklin (댄 브리클린): VisiCalc

VisiCalc를 만들었던 댄 브리클린은 2006년 인터뷰에서 “VisiCalc를 처음 착안했을 때 그렇게 크게 성공할 줄 알았느냐”는 질문에 아래와 같이 대답하면서, 현실적이 될 것(“be practical”)을 강조합니다.

I hoped it would be very successful, but the idea that there would be a computer on every work desk was something we all knew should happen — but given the slow acceptance of computers for everyday use in the office over the years, we knew such penetration had many barriers, and we had to be “practical” in out thinking.

I mean, I’ve been told since I was a child in the 1950s and early 60s that within ten years we’d have TV sets we could hang on the wall. That didn’t become a reality to most people until just the last year or two — over 40 years later.

I knew using VisiCalc was an obvious thing for most of business as I was taught it, but then word processing was also obvious, and it was taking off very slowly. You hope for big success (if you don’t think your product is that important, why do it?) but try to be practical just in case.

(의역: 저는 VisiCalc가 크게 성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책상에 다 컴퓨터가 올라갈 것이라는 것은 모두가 예상한 사실이지만, 그 동안 오피스에 컴퓨터의 보급 속도가 느렸던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컴퓨터 보급에 많은 장애물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생각을 할 때 “현실적”이어야만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저도 어릴 때부터인 1950년도 60년대 초부터 10년 내로 TV가 벽에 걸릴 것이라고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된 것은 40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저에게는 VisiCalc를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의 비즈니스에게 분명해 보였지만(또 그래서 생각한 대로 됐지만), 또 한편으로는 저에게는 워드 프로세서도 널리 사용될 것이 분명해 보였는데 그것은 또 훨씬 오래 걸렸습니다. 따라서 큰 성공을 바라더라도 만일을 위해 현실적이 되어야 합니다.)

- Dan Bricklin, Inventor of the Electronic Spreadsheet (2006)

즉, 어떠한 기술이 널리 퍼져 있는 이상적인 먼 미래를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실제 사람들이 사용할 어플리케이션을 만들 때는 보다 현실적으로 접근하여야 할 필요가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Marc Andreessen (마크 앤드리슨): Mosaic

Mosaic/Netscape를 만들었고, 지금은 Andreessen Horowitz라는 벤처캐피털에서 블록체인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투자하고 있는 마크 앤드리슨은 2014년에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Why Bitcoin Matters (왜 비트코인이 중요한가)”라는 글에서, 비트코인의 네 가지 use case를 예상합니다.

  • 해외 송금(international remittance) — 너무 높은 수수료
  • 전통금융서비스를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뱅킹(global payment system for the people outside of the traditional financial system)
  • 소액결제(micropayments) — content monetization 등
  • 공개(?) 지불(public payments) — TV 중계에서 “Send me Bitcoin!”이라는 QR 코드가 있는 플래카드를 들고 25,000달러를 받은 사례

현 시점에서, 2014년의 글에 쓰여 있는 위 네 가지 쓰임새를 바탕으로 한 이렇다할 킬러앱이 나왔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가 예상했던 쓰임새대로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실제로 사용하고 있고(저도 비트코인을 지불용으로 실사용하고 있습니다), 관련하여 많은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편, 마크 앤드리슨은 올해(2019년) 한 인터뷰에서(아래 인터뷰 팟캐스트 참조),

블록체인은 왜 킬러앱이 없느냐, 왜 amazon.com과 같은 use case가 없느냐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아마존이 생기기 전에도 사실 동네 서점이 인터넷 사이트를 여는 등의 작은 use case들은 있었고, 이후 보안이나 비즈니스모델 등등 많은 것들이 발명/개선되면서 amazon.com이 나올 수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현재 블록체인/암호화폐는 일반 사람들이 쓰기 너무 힘들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1992–1993년 당시 인터넷을 쓰는 것은 현재 사람들이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1993년 브라우저를 만들던 당시 지불수단을 브라우저에 담을 수 없었고 그래서 인터넷 서비스들을 유료화할 수 없었기 때문에, 현재 대부분의 인터넷 서비스들이 광고에 기반할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인터넷 서비스들이 자신의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받지 못하고 사용자 역시 자신의 참여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받지 못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블록체인이 next big thing이 될 것을 전제하고 하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당시 인터넷의 대중화를 직접 몸으로 경험하고 인터넷의 킬러앱을 만들었던 사람이 생각하는, 블록체인이 지금처럼 소수의 사람들만 쓰는 그들만의 리그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이기도 합니다.

블록체인 킬러앱을 찾아서 — 이제 남은 것

인터넷이 생기면서 ‘정보’를 국경없이 누군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전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그동안 인터넷으로 할 수 없었던 ‘가치’를 국경없이 누군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전달할 수 있는 세상이 왔습니다. 이 특성을 어떻게 활용하면 일반 대중이 받아들일지는 아직 아무도 정확히 모르고 있지만, 그냥 조그마한 해프닝으로 끝나기에는 블록체인은 너무 큰 기술인 것 같아 보입니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이 흔하게 쓰는 블록체인 킬러앱이라는 것이 과연 나온다면, 그 킬러앱은 대기업보다는 스타트업에서 나올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블록체인 킬러앱을 찾아내기 위해 남은 것은 수많은 스타트업들의 도전일 것이고, 수많은 실패한 도전 중에 한두개가 살아남아 일반 대중에게 퍼지면서,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 가지는 가치와 효용이 비로소 일반 사람들에게까지 널리 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은 매일경제와 디스트리트에도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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