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O와 스타트업 투자 (ICOs and Startup Equity Investments)

SJ
8 min readJan 5, 2020

인터넷 채팅

아직도 어릴 적에 외국인과 “인터넷 채팅”이라는 것을 처음 했을 때가 기억이 납니다. 인터넷 채팅이라는 것이 있기 전에 외국인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편지와 전화 밖에 없었는데, 전화는 아는 사람과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모르는 외국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사실상 편지가 유일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외국어에 관심이 있거나 외국인과 이야기를 해 보고 싶은 학생들은 비슷한 또래의 외국 아이들과 ‘펜팔’을 했습니다.

저도 호주에 살던 Meli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와 그 옛날 펜팔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손편지를 직접 써서 우체국에서 외국으로 보내면, 두세달 있다가 역시 손편지로 답장이 오곤 했습니다.

펜팔과 주고받던 손편지

그러던 와중 90년대 중반쯤에 인터넷 채팅이라는 것을 접하고 프로그램을 깔아 채팅방에 처음 들어가 보았는데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외국인 친구와 실시간(!)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것이지요. 한 번 연락 주고받는데 두세달씩 걸리던 것이 실시간으로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 때 느꼈던 짜릿했던 기분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당시 IRC 채팅방 화면의 예

그 흥분되고 짜릿했던 기분은 결국 인터넷이 사용자에게 주었던 가치 — 국경을 넘어선 정보의 자유로운 전달, 또 사람들과의 국경을 넘어선 실시간 의사소통 — 를 사용자로서 직접 경험하면서 느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 나와 있는 수많은 인터넷 서비스들도 사실 모두가 인터넷을 통해 국경을 넘어 정보를 전달하고 다른 사람과 실시간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요.

비트코인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6년경 저는 외국의 인터넷 블로그 글들을 통해 비트코인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처음 듣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재밌는 게 있네”, “인터넷 geek들이 사용하는 무슨 재밌는 장난감 같은 건가 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그러다가, 2017년 초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처음 구매해 보고, 구매한 비트코인을 개인 지갑으로 송금해 보면서 90년대에 인터넷 채팅을 하면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짜릿하고 흥분되는 기분을 정말 오랜만에 느꼈습니다.

블록 익스플로러에서 볼 수 있는 비트코인 거래의 한 예. 16NjXyn… 주소에서 31wYrEZx… 주소로 0.01541565 BTC가 보내진 것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링크: https://blockchair.com/bitcoin/transaction/7e0f03426ab6d54d02115c427e324f019535e4e3a4cbf3c6da44cd1fa1a62eb9)

그 옛날 ‘메시지’를 순간적으로 외국의 누군가에게 보낼 수 있게 해준 인터넷 채팅방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 ‘돈(가치)’이라는 것을 인터넷으로 외국의 누군가에게 은행을 가지 않고도 그냥 제 맘대로 보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제가 보낸 비트코인이 송금이 되는 것을 블록 익스플로러(*블록체인에서 벌어지는 모든 거래들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인터넷 서비스)로 직접 확인하면서, 그 옛날 인터넷 채팅방을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흥분되는 기분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기술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ICO (Initial Coin Offering) 참여

블록체인을 접하면서 두번째 흥분되었던 기억은 ICO에 처음 참여했을 때였습니다. 저는 EOS라는 암호화폐의 ICO에 소액 참여했었는데, EOS의 ICO가 진행되던 2016년 6월 — 2017년 6월은 사람들의 암호화폐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더 고조되던 시기였고, 당시 EOS는 이더리움을 대체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대감 속에서 많은 투자금을 모았습니다.

ICO를 진행하던 당시 eos.io 사이트

당시 대부분의 ICO가 그랬던 것처럼, EOS의 ICO를 진행하던 블록원(*Cayman 소재의 법인)은 ICO의 참여자들로부터 이더리움을 받고, 그 대가로 자신들이 발행한 암호화 토큰인 EOS 토큰을 발행하여 ICO 참여자가 송금한 이더리움에 비례하여 토큰을 할당하여 주었습니다. 이 때 ICO 참여자가 받은 EOS 토큰의 성격에 관해서는 이것이 주식과 같은 증권인 것이냐 아니면 서비스를 사용하는 데 쓰는 티켓과 같은 것이냐 등등 법적으로 의견이 분분하지만, 직접 ICO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EOS 토큰에는 두 가지 성격이 공존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즉, EOS 토큰은 이후 EOS 블록체인이 돌아가기 시작하면 그 블록체인 위에서 블록체인의 리소스를 쓰는데 사용될 수 있는 사용권이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가격 상승을 기대하며 EOS라는 대형 글로벌 프로젝트의 일부 지분을 가지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한 사용자가 2018/5/31에 EOS 토큰을 구매하는 모습

사실, 유망해 보이는 스타트업의 지분이라는 것은 국내에서도 대표와 친분이 있거나 어떤 경로로든 인연이 있는 엔젤투자자나 벤처캐피탈과 같은 기관투자자들만 지분을 사서 들어갈 수 있는 것이고, 저 같은 평범한 개인에게는 실제로 그런 초기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금융전문가나 전문투자자, 자산가가 아닌 일반 개인이 아무런 제약 없이 초기 스타트업의 지분에 투자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 두는 것은 투자의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꼭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저로서는 괜찮아 보이는 스타트업이 있고 그 스타트업이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매우 공감하고 같이 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실제 투자의 길이 거의 막혀 있기 때문에 지분 투자를 통해 같이 참여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습니다. 국내 스타트업도 사정이 이런데, 해외에 소재한 스타트업은 저와 같은 개인이 투자를 통해 그 스타트업의 지분을 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 EOS라는 프로젝트는 해외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컴퓨터 앞에 앉아 스마트 컨트랙트 주소로 제가 가진 이더리움을 보내기만 하면 은행이나 증권사를 통하지 않고 아무런 중간 브로커도 필요 없이, 초기에 참여하여 지분(?)을 얻는 것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외국 회사의 주식이라는 것은 사실 상장회사의 주식도 구매하는 것이 쉽지 않고 비상장회사의 경우에는 구하는 것이 개인으로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데, 블록체인 기반의 프로젝트는 이것이 아주 쉽게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게 너무 신기하고 짜릿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두 가지 경험, 즉 “돈(가치)도 국경과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보낼 수 있다”(비트코인) 또 “해외 프로젝트도 국경과 상관없이 초기에 참여할 수 있다”(ICO 참여)는 것을 직접 경험해보니, 지금은 당연하지 않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는 너무도 당연히 그렇게 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ICO와 비상장주식

2017년의 ICO 열풍은 물론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과도한 기대 그리고 ICO에 참여하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었던 당시의 상황에 기인한 것이었기는 하지만, 저는 ICO 열풍을 통해서 “프로젝트나 회사의 초기에 투자를 통해 참여하고 싶다”라는 사람들의 숨겨진 욕구를 엿볼 수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상장회사의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회사가 추구하는 미션보다는 숫자로 나타나는 회사의 매출과 영업이익에 기초하여 어떠한 회사의 지분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초기 기업일수록, 특히 엔젤투자자들이 투자하는 설립 초기 단계의 회사일수록 투자자들은 단순히 ‘돈 놓고 돈 먹기’보다는 대표의 열정이나 설립자들이 회사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미션에 공감하기 때문에 투자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프로젝트에 투자를 통해 참여하는 길이 일반 개인에게는 사실상 막혀 있는 것이고 어느 정도 자산과 네트워크를 가진 엔젤 투자자들조차도 대표와 친분이 있거나 하는 경우가 아니면 사실상 특정 회사가 하고자 하는 것에 무척 공감이 가더라도 투자의 기회는 극히 제한되어 있는 것입니다. 현재는 ‘와디즈’나 ‘크라우디’와 같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들을 통해 기업의 초기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일부 해소되고 있을 뿐이지요.

저는 아직도 외국의 모르는 사람과 처음 채팅을 했을 때 느꼈던 기분이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제가 느꼈던 그 기분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현실화가 되어 수많은 인터넷 비즈니스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블록체인으로 송금을 했을 때, 또 ICO에 참여했을 때의 기분이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이런 기분을 비즈니스로 현실화시키기에 아직 블록체인 기술이 미숙하다면, 제가 느꼈던 ‘공감하는 프로젝트에 초기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이 느낌을 현실화시키는 비즈니스가 블록체인 기반이 아니더라도 곧 생겨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글은 매일경제와 디스트리트에도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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